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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은 약한데 치안수준은 높은 이유, 회복적 사법론

by 글로보는 법 2020. 7. 3.

법조인들 사이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회복적 사법. 이는 리스토러티브 저스티스(Restorative Justice)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이는 범죄 피해자의 피해회복, 그리고 현행 형사사법제도의 취약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회복적 사법의 도입을 주장했던 학자들은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범죄피해자의 지위를 보장하고 재범을 줄이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 회복적 사법이라고 주장했다. 그간 형사사법은 수사와 재판 등을 통한 범죄행위의 처벌에만 초점을 맞춰왔고, 때문에 형사사법 체계 아래 피해자는 회복으로부터 소외되고 범죄사실에 대한 증인 정도로 전락하는 등 정신적인 상처를 감수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고는 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회복적 사법론이 힘을 얻었다.

기존 태도였던 응보적 형법은 재범률을 낮추지 못했고, 범죄 피해자의 피해회복에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해 두마리 토끼를 놓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가해자를 엄벌한다고 하여도 피해자와 가해자 간 앙금은 사라지지 않으며, 상처받은 피해자는 사회와 점점 멀어진다. 기존 응보적 형법은 한마디로 '범죄사건에 적용할 법조문을 찾고 형벌을 가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형사사법은 계속해서 회복적 사법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회복적 사법은 기본적으로 '누가 범인인가'보다, '누가 피해를 얼마나 보았는가'에 집중한다. 쉽게 말하자면, 피해자와 가해자, 지역사회 구성원 등 범죄 관련자들이 사건 해결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피해자나 지역사회의 손실을 복구를 추구하는 대응인 것이다.

그간 수사기관과 법원, 교도소 등 모든 형사절차는 여태껏 피고인의 범행에 따른 엄중한 처벌을 내리는 것에만 몰두해왔는데, 회복적 사법은 나아가 피해자를 지원하고 보호하며, 궁극적으로 범죄피해가 있기 전의 상태로 회복시켜주려하는 사법제도인 것이다.

바로 여기서 국민들의 사법불신이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했다. 같은 죄라도 피해자와 합의를 마쳤다면 이를 피해를 어느정도 회복시키기 위해 가해자가 노력했다고 생각하여 재판부는 합의를 마치지 못한 사안보다 경미한 처벌을 내리게 되는데, 그 어떤 뉴스기사를 찾아보아도 피해자와의 합의여부는 설명하지 않는다. 기사에는 '벌금형,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등 선고 결과만 표기하는 것인데, 일반인들의 시각으로는 이 부분이 굉장히 의아할 것이다. '저런 범죄를 저질렀는데 고작 집행유예?'라는 반응이 대부분인 것.

생각보다 대다수의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엄벌만을 원하지 않는다. 실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엄벌만을 원하는 피해자보다는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한 회복을 간절히 원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야 서로 모르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묻지마 사건들이 늘어났지만, 보통 서로 알던 사이에서 범죄가 발생하는 일이 대부분인데, 피해자들은 '사건이 벌어지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제 3자로 벌어진 형사사건과 재판결과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제 3자, 일반인들은 피해자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형사정책적으로도 엄벌주의를 채택했다고 해서 범죄율이 두드러지게 떨어졌다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회복적 사법이 요구하는 변화를 법조계와 수사기관 등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때문에 모든 형사사건에서 '합의'는 매우 중요한 절차로 자리잡고 있으며 예전보다 피의자와 피해자 간 깊은 존중과 이해, 대화의 노력이 필요해졌다. 이를 나쁘게 생각하면 '합의만 보면 처벌은 가볍게 받겠네? 그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인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처벌수위를 낮추기 위한 목적이 있다하더라도 피해자 앞에 무릎꿇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며 적정한 합의금액으로 성의를 표시하는 과정 자체가 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맞다.

대한민국은 회복적 사법이 받아들여진 시기가 늦은편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수준이 높고, 수사기관 등의 실행력도 높으며, 시행이 잘 이루어진 축에 속한다. 비록 처벌수위 자체가 낮아지다보니 국민들의 사법불신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넓게 보면 재범율이 떨어지고 있으며 범죄 건수는 전년재비 10%이상 떨어지는 성과를 보기도했다. 또한 전체 범죄 건수 중 5%가 넘는 사건들이 형사조정으로 해결되고 있으니, 이를 모두 종합해보면 대한민국 치안 수준이 회복적 사법을 통해 계속해서 발전했다고 보아도 무방한 것이다.

다만 날로 흉폭해지는 소년강력범죄에 있어, 회복적 사법을 비판하는 의견이 눈에 띈다. 회복적 사법을 적극 도입하는 형사사법체계는 흉폭한 소년범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모순점을 갖고 있다. 회복적 사법은 피해자와 가해자 간 관계회복을 우선시 하는데, 소년강력범죄의 경우 서로 관계회복을 원하지 않는 (가해자가 반성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난관에 봉착하는 것이다. 이 점만 보더라도 아직까지는 고쳐나가야할 점들이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사사법은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을 계속해서 강조해야한다. 거센 형벌은 절대 범죄를 잠재울 수 없다는 점에서 회복적 사법이 더욱 폭넓게 도입되어야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결국 형벌 강화 보다는 범죄 예방이 중요한 것이다.